오직 마리미테에 미쳐서 만든, 망상의 얼음집입니다.

by 루야
24번째 주제 宿題 - 숙제







하늘이 푸르렀다. 아직 봄인데도 어째서 이토록 가을하늘과도 같은 빛을 뿜어내는걸까.

-순간. 차라리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리길 바랬다. 그리고 곧 실소한다.


이게 무슨 억지인가. 결심을 굳힌 지금에 와서까지 엉뚱한 데에다가 이 마음을 풀어보려하다니.






늦봄의 화창한 어느날.

이미 내게도 그녀에게도 졸업한 모교인 리리안.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던 장미의 관.

난 그녀에게 내던지듯이 와달란 말을 했다.



나에겐. 마무리지어야 할 숙제가 있다.






24번째 주제 宿題 - 숙제





[나아가는 발걸음]










"자, 여기 홍차."
"고마워."

나는 익숙하게 요코에게 홍차를 건냈다. 하지만 어딘가 나는 약간 긴장한 듯했다. 얼마전까진 당연했던 일. 그렇지만 난 졸업 후 처음 요코를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일상이였던 일에조차 긴장하고 있는 나. 속으로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낸다. 뭐냐, 지금 이 꼴은. 정말 나답지 않잖아. 그 여유만만하고 느슨하게 늘어져있던 토리이 에리코는 어딜 간 거지.
그런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요코는 내가 건내준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맛있네- 같은 말을 하며 조용히 잔을 내려놓는다. 맛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래선 일부러 요코가 좋아하는 취향을 파악한 내가 바보가 되니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요코가 변함없이 차분하게 날 응시하며 말문을 연다. 언제나처럼 살짝 미소를 띄우곤.

"졸업 후 처음 보는거네. 잘 지냈어?"
"뭐어..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신선해서."
"잘 지내는 것 같네."

역시 안부인사부터. 영문도 모른채 졸업한 모교의 학생회실이란 이해할 수 없는 장소에 불려나왔으면서도 당황한 기색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아마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몇개월만에 처음 만난 고등학교 동창에게 자연스레 안부를 묻는거겠지.
몇개월 만인데도 교복을 벗은 탓인지 어른스러워보이는 요코. 원래 어른스러운 애였지만 그 것과는 좀 더 다른. 아직 '어린애인 때의 어른스러움'과 '어른일 때의 어른스러움'은 확연히 다르다. 언제나 그랬다. 요코는 언제나 그 나이 또래보다 차분하고 성숙한 인상을 풍긴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 요코는 나이보다 성숙했다. 차분한 우등생. 셋 중에선 확실히 요코가 가장 어른스러웠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아도 마찬가지겠지.
이런저런 별 내용없는 근황들을 주고받았다. 역시나 머리아픈 법학부. 어떻게 그런 걸 외우고 있을 수 있는걸까. 요코니까- 라고 생각하고 넘긴다. 우등생이시니까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불러낸거야? 그것도 이런 특별한 장소에."
"아아.. 흐음... 그래, 숙제인가."
"숙제?"
"응. 숙제. 마무리 지어야하는데 요코가 도와줘야하거든."

내 말에 요코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당연히 알 리가 없다. 뜬금없이 몇개월만에 만난 친구가 숙제 마무리하는 것 좀 도와줘- 라니. 무슨 숙제냐- 라고 묻기 전에 무슨 소리야- 라는 말이 우선이 될 듯한 황당한 말. 하지만 난 오랜만에 보는 요코의 우등생 탈피버젼에 웃음이 나왔다. 이건 그저 동창이 아닌 요코의 친구란 위치의 특권.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저런 모습의 요코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웃는 날 보고선 익숙한 패턴대로 놀림당한거라 생각한 건지 약간 발끈하는, 딱딱하게 굳어지는 표정. 그 표정이 또 귀엽다.

"이런 곳까지 불러내서 할 이야기가 날 놀리는 거였어?"
"이런이런- 그렇게 삐지지 말라구, 요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뭐야."

나도 모르게 예전처럼 히죽히죽 웃으면서 요코에게 말을 건다. 예전처럼 작게 투덜거리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구제불능이라니까- 정말 나란 인간은.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느긋하게 요코를 놀리는 재미를 즐기기 위해 만나자고 한 게 아니다. 그럴 거였다면 일부러 이런 장소에까지 불러낼 이유가 없다. 일부러 불러낸거니까. 꼭 이 곳이어야만 했으니까. 추억이 깃든 이 곳이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야 정말 마무리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의자에서 일어나 내 지정석이였던 쇼파에 익숙하게 눌러앉았다. 등으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 몸이 편해지니 점점 더 요동치는 심장이 더욱 거세게 느껴진다.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짧고 얉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조금도 다름이 없는 톤으로 다시 요코에게 말을 건낸다.

"숙제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요코가 필요해."
"그 말은 좀 전에도 들었어. 그러니까 대체 무슨 숙제야?"
"글쎄-"

무언가 가슴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곤란하다.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해. 아직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감정은 소용돌이 치려하고 있었다. 않 돼, 아직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본다.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똑바른 자세로 앉아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요코가 보인다. 약간의 불만과 의문이 섞인듯한 얼굴. 보통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보이겠지만 난 알 수 있다. 난 요코의 친구니까.
난. 마무리를 위해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뭔가갈 딱히 할 필요는 없어. 요코의 역활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거야."
"듣기만 하면 되는거야?"
"응. 다만 아무말도 하면 않 돼.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정말 그걸로 되는거야? 라고 묻는 요코는 어느새 자신이 놀림받는 것같이 느꼈다느 것도 까맣게 잊은 듯 했다. 날 도와줄 생각인거겠지. 친구가 자신에게 부탁한 거니까. 요코는 정말 어이가 없을정도로 착해서 내가 이렇게 일부러 불러내서까지 도와달라고 하는 거니까, 두 말 없이 들어줄 생각인 것이다. 정말.. 바보같이 착해서. 저런 요코를 알고 있는 건 나와 다른 한 사람, 세이 뿐. 가장 요코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니까. 나보다도 잘 알겠지.

그러니까-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감정을 억눌러본다.

"이 숙제는 내가 내 자신에게 낸 거야. 졸업하던 그 날. 내가 스스로에게 낸 숙제였어. 어떻게든 빨리 끝내야 될 숙제. 그리고 반드시 끝내야하는 숙제."

왠지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아서 요코 쪽에서 않 보이는 오른쪽 손으로 쇼파 가죽을 세게 움켜잡았다. 그런 목소리, 내면 정말 곤란해져. 마무리 짓기가 힘들어지잖아. 무엇보다 마지막도 지금까지처럼 아무렇지않게 보이고 싶어. 그러기위해서 몇개월이나 걸려 이렇게 온 거니까. 드디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다 잡히지 않아서. 결국은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말았어. 하지만 이제 이렇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어. 두 번이나 할 자신은 없으니까, 잘 들어줘."

요코는 부탁대로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심각하다. 무언가 심각하다고 느낀 듯.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듯도 하지만 부탁을 받았으니 얌전히 아무말 않고 날 쳐다보기만 한다. 요코는 부탁받은 걸 어기는 일 같은 건 없으니까. 아마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 저렇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들어줄 것이다.
엷게 미소지었다. 융통성 없어 보일만큼 성실하다. 그런 점도 사랑스러운 나의 소중한 친구.

"내가 리리안을 나간 건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많은 걸 정리했지.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그리고 추억으로 간직해야했던 것도. 이 것도 그 것 중 하나야.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정리해야할 것이지."

이제 리리안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리리안에 질렸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걸 정리하고, 추억으로만 둘 생각으로 덮어놓은 것들도 있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나라도 오랫동안 지내온 리리안을 뒤로 한다는 건 꽤 각오가 필요했으니까.
졸업 전, 나는 모든 걸 정리했다. 나름대로 노력도 했다. 하지만 하나가 남았다. 그 것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난 스스로에게 숙제를 낼 수 밖엔 없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길 바라면서. 그리고 확실히 마무리 짓길 바라면서.
하지만. 어쩌면 졸업이라는 건, 하나의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요코, 당신이 들어주어야만 했어. 그래서 이런 장소까지 오게 한 거야."

이제 다음 번에는 말해야 한다. 심장이 무엇인가 무거운 바위 같은 것에 짓눌리는 것만 같다. 무언가 뜨거운 게 가슴에 끌어올라서. 목소리가 잠길 것 같다. 짧게 심호흡을 한다. 벌써 이게 몇 번째던가. 그리곤 차분하게 말을 내뱉는다.

"중학교 때부터 줄곧 널 좋아했었어."

그 말 한 마디에 줄곧 심각한 빛을 띄던 요코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악- 같은 것들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 확연히 눈에 보였다. 입은 열어 무언가 말하려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문다. 요코는 나와 내가 허락할 때까지 아무말 하지 않고 듣고 있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녀는 약속을 깰 사람이 못 된다. 그래서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서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역시 우등생-.

"그런 표정 짓지마. 과거형이잖아? 말 그대로 난 정리를 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야. 그래서 언젠가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째 요코의 표정에 서글픈 빛이 돌기 시작한다. 아아, 역시나. 이럴 줄이야 뻔하게 알았지만 그런 표정 짓지 말아달라구. 그렇게 되면 이 쪽이 곤란해져. 말하기 힘들어진다구. 내가 울리는 것 같잖아? 사실이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내가 이렇게 안간힘을 쓰면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그런 표정을 봐 버리면 정말 힘들어져버린다. 흔들려져 버린다.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그럼 분명 결심이 흐트러져버릴테니까.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안간힘을 써서 겨우겨우 6년 간의 애정을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이 것은 마무리.
흐트러질 순 없다.

"네가 세이를 좋아면서 힘들었던 것도. 힘들어하던 세이를 보며 네가 더 힘들어했던 것도. 그리고 작년에 세이가 널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때서야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 난 가장 가까이에서 둘을 지켜본 친구니까. 모를리가 없잖아. 넌 나한테 상담도 했었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고 있는 건가, 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요코를 지켜봐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얼마나 가슴아프게 세이를 사랑해왔는지. 시오리씨가 떠난 뒤 힘들어하는 세이를 보며 그보다 더 망가지고 속을 태우고 있던 요코를. 세이가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 말을 내가 했을 때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눈물을 내비치던 그 모습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누구보다도 옆에서 널 지켜봐왔으니까.

" 그러니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정리해야 한다고. 그만둬야 한다고. 그저 가장 소중한 친구 중의 하나라는 자리로 만족해야 한다고. 그게 네게도,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더라구."

말처럼 쉬웠다면 6년이란 세월동안 그저 바보처럼 바라보고만 있진 않았을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처럼 감정은, 애정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내 가슴을, 심장을 죄어와 난 숨을 쉬기도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정리해야했다. 정리하는 것 외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고, 그랬기에 비록 이렇게나 시간이 걸렸지만 모든 걸 정리하기 위해 이렇게 요코와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정리가 돼서. 그래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매듭을 짓기 위해 널 만난거야. 일종의 고해성사인가?"

요코의 표정은 형용할 수 없을만큼 복잡했다. 나보다도 더 복잡해보였다.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역시나 죄책감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억눌렀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다시 요동치려했다. 난 차분히 요동치는 그 것들 다시 억눌러보았다.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도 나중에.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다.
장난스럽게 오른쪽을 선서하듯이 올려보았다.

"나 토리이 에리코는 지난 6년간 미즈노 요코를 사랑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악우인 토리이 에리코로써 미즈노 요코의 곁에 있을것을 맹세합니다-. 어때? 받아주겠어, 요코양?"

난 어느새 평소와 비슷하게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그러는지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매듭이 지어져서 후련한 건가? 아니야, 그런 감각이 아니야.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거야?!"

갑자기 요코가 큰소리로 외쳤다. 생각도 못했기에 난 깜짝 놀라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요코는 어느새 울듯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무언가 북받쳐올라왔다. 난 억지로 그걸 삼키며 요코를 쳐다봤다.
그런 내게는 아랑곳 않고, 요코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등생답지 않게- 라는 장난스런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요코도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잖아! 사실은 힘들었을 거 아냐? 그런데 왜 그렇게 웃고 있는거야? 차라리 화를 내!"

살짝 울먹임도 섞인 듯한 그 말에 내 감정은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억누르고 억누르던 격한 감정들이 세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어느새 쇼파 가죽을 잡은 내 손은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것도 모자라 약간씩 몸이 떨리고 있는 듯도 했다. 위험해. 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느새 요코가 달려와 내 앞을 막아선다.

"그렇게나 괴롭혔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널 다시 보란 말이야.. 어떻게 네게 사죄를 하란 거야... 난... 난....."

확연히 울먹임에 젖어드는 요코의 목소리. 내 표정이 더이상 평정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죄할 필요 없어. 그냥 지금까지처럼 친구로 대해주면 돼."
"그걸론 사죄가 되지 않아!!"
"...그냥 내 말대로 해 줘."
"제대로 말해줘, 에리코.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더 없이 상처입은 듯한 모습의 요코가 날 막아선 채 울먹인다. 어떻게해야하냐고 소리친다.



.
.
.
.
.
.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대체 나보고 뭘 말하란 말이야!!"

갑작스런 내 외침에 요코는 멈칫했다.

"사실대로 다 말하란 말이야!? 그래, 힘들었어. 죽을 것만 같았어. 누구보다 널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데 넌 널 보고있지 않은 세이를 사랑한다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어! 내 마음같은 거 조금도 모르는 네가 원망스러웠어!"

요코는 마치 굳어버린듯 멍하니 날 쳐다만 보았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내 모습은 처음 봤을테니까. 그만하라고 외치는 마음과는 달리 한 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감정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네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널 괴롭게하는 세이도 미웠고, 그런 세이를 차지한 시오리씨도 미웠고, 그런 세이를 보며 눈에 띄게 야위어갈 정도로 힘들어하는 너도 원망스러웠어! 나는 단 하나도 가질 수 없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널 모두 가진 세이가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어느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왜 나는 않 되는건지를 생각하면 견딜 수없었어!"

고개를 떨궜다. 쥐어짜내듯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이를 질투하고 널 원망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어..."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의 어두운 면. 요코를 모두 차지한 세이를 질투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요코를 원망했다. 그런 자신의 더러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통.

그 말 뒤로 한동안 침묵만이 익숙한 그 방을 채워갔다. 나도 요코도 아무말이 없었다. 요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침묵은 짙어져만 갔다.




그러다 순간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래, 난 마무리를 하러온 거다. 지난 6년간의 질기던 사랑을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난 지금 이 자리에서 요코와 마주하고 있다. 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요코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복잡한 표정.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이렇게 감정을 터뜨리는 걸 보고 싶었어?"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래서 날 다그친 걸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요코는-.
평소에 자주하던 말이 떠올랐다. 짧게 한숨을 내쉰다. 됐어. 이걸로 됐어.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로 된 거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지루해하는 날 다그치는 모범생 친구, 요코로써 사이좋게 지내줘. 그게 최고의 선물이야."

내 말에 요코가 시선을 들어 날 쳐다본다. 생글-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그리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요코의 이마를 가볍게 누르며 가볍게 말했다.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니까아- 오늘따라 머리, 안 돌아가는거야, 모범생 친구?"

그제서야 요코가 어설프게나마 웃는다.









이걸로 된 거다.

이걸로 마무리. 매듭은 완성.

내가 나에게 낸 숙제는, 이제 완성.




비록 아직 완벽히 모든 걸 지나간 시간의 저편으로 흘러버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정말 친구로써 당신의 옆에서 지금을 추억할 수 있다면, 좋을거야.







그러니 그 날이 올 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내딛는 그 발걸음의 앞에는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이제,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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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50제. 숙제입니다. 에리X요코 커플링. [요즘 버닝중..]


오로지 감정을 터뜨리며 소리치는 에리코님을 쓰기 위해 시작했던 듯도 하고... 사실 지금 새벽에 시작해서 밤을 새워 쓴지라 반쯤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아핫..


......... 사실은 죽겠습니다... OTL...




반 졸린 정신에 이게 얼마만의 완성작인지... 그래서 취향이 아니게 대사들이 유치 쌈싸먹는 수준이 되버렸.. 아아, 제정신으로 보면 돌아버릴지도. 큰일이네.

............... 썼으니 일단은 올리기. 우훗...






.......... 네, 맘대로 씹으셔도 좋아요... [자포자기]



by 루야 | 2004/08/17 06:25 | 마리미테/50제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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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uAn at 2004/08/17 07:15
오오 잘 읽었습니다!! 나이스 나이스 +_=//
P.S: 링크 퍼갑니다.
Commented by 茨唎 at 2004/08/17 09:01
깔끔하게 터트리고, 깔끔하게 수습하고. 좋아요좋아. :D
저도 이글루를 만들고 싶지만, 만들만한 주제가 없어요..ㅡㅜ
드디어 루야님의 소설을 읽게되겠군요, 이렇게. (생글)
Commented by 루야 at 2004/08/17 14:28
KuAn/어이쿠, 감사.. [어이] 아니.. 본인은 깨끗하게 날리고 싶.. [으으윽]
茨唎/아라라, 왠 아침에..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혹시 이거 무언의 압박? 지금 던져버린 소설들에 대한.. [찔리니?]
아빠/아니, 과찬의 말씀을. 이건 말 그대로 글쓴지 몇년만에 마음잡고 '휘갈긴'거라서.. 칭찬,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茨唎 at 2004/08/17 15:31
푸하핫- 니에에. 당연지고.(생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_-+ 뭐, 마리미테라면 당신에게서 매일매일 소설들을 받아낼거라고 믿어요. 그러니 열심히 써주셔요-★
Commented by 茨唎 at 2004/08/17 15:33
아아아, 네에. 빼먹었군요. 아침에 지각을 했더랍니다. 그래서 이왕 갈거면 쉬는시간 맞춰서 가야지- 라는 심보로 밍기적밍기적거리던 중 어제 컴퓨터를 못해서요. 당신글 올라온거 보고 학교로 갔는데 어느새 2교시가 시작되버렸지 뭡니까. 그것도 담임시간으로. ㅠ▽ㅠ
Commented by 루야 at 2004/08/17 18:40
茨唎/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아핫.. 타블렛이 있으면 그림도 올라가겠지만.. [으윽] 그리고 저건 지금 제정신으로 보니 돌 것 같습니다만.. [먼 산]
Commented by 조쨩 at 2004/08/17 19:24
안녕하세요 ^^ 상호링크 겁니다 +ㅁ+
Commented by 루야 at 2004/08/17 19:26
조쨩/어이쿠, 감사합니다. 이런 시원치않은 얼음집을.. [긁적]
Commented by 문유 at 2004/09/29 23:49
와 뭔가. 요코사마의 성격이 잘 드러난 [...]
에리코 쪽은, 약간 평소 이미지가 아닌;?
Commented by 루야 at 2004/09/30 07:22
문유/요코님의 성격이라...[웃음]
에리코님은 물론 평소의 이미지가 아님. 일부러 저렇게 설정.. 이랄까. 그러니까 애정관계에 한해서는 저 분도 저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써본 것. 그러니까 욕망의 상징. [뭔가 말이 약간 이상한데]
Commented by 花藤 at 2004/10/15 01:25
에리코 님은 힘든 사랑을 하시는..아니 하셨었군요. 왠지 저렇게 폭발하시는 에리코 님 보고싶어요~ 에에, 잘 읽었습니다. 다른 SS도 기다리겠습니다///
Commented by 루야 at 2004/10/15 03:40
花藤/에리코님은 삼장미 중에서 가장 시리어스물에 적합하고 안타까운 인물- 이라는 설정입니다. 어디의 C모님의 설정과 비슷- 이랄까나. [웃음]
다른 SS는.. 으음.. 그러니까아.. 글쎄요. [야!]
Commented by 감돌 at 2006/01/29 01:39
심각하게 우울하군요;
에릭호님;;
에릭호님;;
-_-;;;;
이거;;제가 릭호님을 아무래도 시마코양과 이어줘야할것만같은 포스;;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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